(이시대 최고의 쌈닭으로 평가받는 소규모 도시의 대표자)
김제동씨가 토크 콘서트에서 이재명 시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런 분이 대신 싸워주니 우리가 편하죠"
그렇다. 우리는 싸움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여차하면 내 배를 찔러 내장을 휘젓겠다는 인간들이
이미 우리 주위에 판을 치고 있는데도.. 그렇다.
죽음과 성은 흔하디 흔한 폭력의 산물인데
우리는 그런 시대를 지낸, 대화 없이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대화를 원할까?
.
.
무서운 이야기 1탄.
일제 시대의 혼란기에 살던 노인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살아 있고
학도병과 일본군, 독립군으로서 서로를 죽이고 여성들을 유린하던
인간들이 아직 죽지 않았다. 그들은 폭력 없는 평화를 외치는 우리를
과연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무서운 이야기 2탄.
6.25가 일어난 지 70년이 지나지 않았다.
북한군보다 무서웠던 사람들은 지방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들은 이유없이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인민재판으로 죽이고
그들의 가족인 여성들을 더럽혔다. 그리고 도망가 신분세탁을 했겠지.
당시 나이를 20살 안팎으로 치면 아직 아흔이 되지 않았다.
백세 시대인 지금 아직 10년 이상의 시간동안 그들은
우리 주위에 남아 있을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 3탄.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된 것은
개거지같은 박정희 정권 중간이었다.. 1965년부터.
당시에 외화벌이라는 빨대를 꼽으러 간 한국군은 56만 여건의 작전을 치루며
왜 적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했다.
20살에 마지막 1973년 전투를 했다고 하면 지금 겨우 63세다.
그 나이에 남의 나라에서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고
여성들을 유린한 후 가슴을 도려낸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 4.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전두환 시절
광주사태에서 발포를 하고 사람들을 때려서 죽여댔던 계엄군인들은
1980년에 스물에서 스물 다섯 살. 지금 많아봐야 예순이다.
더불어 학생시위에서 곤봉세례와 최루탄 패스티벌을 하던 백골단과
전경들은 1996년 연세대 사태가 일어나서야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든다.
1990년에 전경생활을 하며 백골단으로 사람을 두들겨팼던 사람들은
지금 겨우 마흔 중반이다. 사람을 샌드백으로 여기던 전투기계들에게
과연 한국말이라고 하는 언어로 대화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싶다.
시간이 지나 독재자의 딸이 정권을 잡고 민주주의를 1970년으로
퇴보시킨 지금, 국감에서 최고의 한 마디는 "코너링"이 된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한테 국가 공권력의 일부인 경찰이 조크를 깐다.
회의나 토의, 대화나 다수결보다, 폭력과 권력이 익숙한 이들에게
민주적인 사회라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불편한 뻘짓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이 사회의 과실을 누리고 싶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은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돈과 권력을 가진 미친 그지깽깽이들이
작은 일만 터지면 쌩쑈를 쉬지않고 해대는 것이고,
대화를 포기하도록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이끄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세련되지 않다고 욕 좀 먹어도 상관없으니,
저 시끄러운 놈들 입 좀 막고 백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애꿎은 백성들에게 뜯어먹었던 거 다 토해내게 만들면
그걸로도 투표 할 가치는 충분하다.
배고파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분노에 휘말려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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